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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새

출간 소식과 순례길, 스페인 이야기

안녕하세요. 탤러해시입니다.

 

연말연시 잘 보내셨나요?

<추락하는 새>가 출간되어 새 글을 올립니다. 12월 출간을 말씀드렸는데 늦어져 죄송합니다.

 

빈손으로 오기 허전해 직접 촬영한 산티아고 순례길 사진을 들고 왔습니다. 소설 내에선 언급하지 않은 정보성 내용도 곁들였습니다. 정확히 10년 전 1월 사진입니다. 옵티머스 G 프로로 촬영했고, 저는 사진을 잘 못 찍습니다. 개인 사진이니 이곳에서만 봐주시길 바랍니다.

 

산타 마리아 데 레글라 데 레온 대성당

 

다들 아시겠지만 엘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지로 향하는 길을 일컫는 말입니다. 프랑스 길, 북쪽 길 등 순례 루트는 다양한데요, 저는 레온 - 산티아고 루트를 택했습니다. 레온에서 동방박사의 날을 보내고 그다음 날부터 걷기 시작했습니다.

 

 

순례자 여권은 여정을 기록하는 수단이자 증표입니다. 순례자 여권이 있어야 알베르게에서 머물 수 있고 산티아고에서 증명서도 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 여권과 달리 만료일이 없기 때문에 중간에 순례를 중단한 경우 향후 다시 와서 멈춘 지점부터 도장을 찍어도 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상징인 가리비와 노란 화살표는 도심과 자연 곳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종착지까지 이정표가 이어지기 때문에 이들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됩니다.

 

 

 

걷다 보면 아스팔트, 들판, 산길, 오르막길, 내리막길, 평지가 번갈아 등장합니다. 순례자는 평균 10kg의 배낭을 짊어지고 하루에 20 - 30km 정도를 걷습니다.

 

 

그렇게 길 위에서 하루를 보내고 알베르게에서 체크인을 합니다. 알베르게는 사설과 공립으로 나뉩니다. 공립은 지자체, 수도원,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곳인데요, 대체로 사설보다 열악합니다. 그렇지만 또 그런 점 때문에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곳이 많습니다. 10년 전 기준 공립은 1박에 5유로, 사설은 평균 10유로였습니다.

 

베가 데 발카르세의 공립 알베르게

 

작중 스치듯 언급된 오세브레이로 아래의 공립 알베르게입니다. 왼쪽 버너 옆이 자는 공간이었는데요, 실제로 문에 잠금장치가 없었습니다. 원래 이날 오세브레이로까지 오를 예정이었으나 비도 오고 안개도 짙어 아랫마을에서 일찍 짐을 풀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사진입니다. 비가 그쳐 있길 바라며 일어났더니 비 대신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오세브레이로는 해발 1300미터에 위치한 산꼭대기 마을입니다. 정상에 알베르세와 식당 등이 작게 모여 있습니다. 종교적 의미를 지닌 장소라 순례자는 보통 오세브레이로에서 하루 묵고 갑니다.

 

 

위 사진이 정상에서의 풍경입니다. 사진에 다 담지 못했는데 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눈보라가 심했습니다. 발자국마저 눈보라가 덮어버려 정상에 도착했을 때 사방이 설원이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니 올라갈 때 힘들었던 기억은 희미하고 정상에서 느낀 감동만 생생히 기억나네요.

 

 

오세브레이로부터 갈리시아 지방입니다. 스페인은 겨울이 우기고 갈리시아는 스페인 내에서도 강수량이 높은 지역이라 오세브레이로 이후부터 비와 동행했습니다. 윈도우 배경 화면 같은 장관이 펼쳐지다가도 비가 내리고 잠시 개었다가 퍼붓길 반복했습니다.

 

 

비의 변덕이 멎은 날 산티아고에 입성했습니다. 산티아고는 시골과 소도시만 오가던 순례자에겐 이질적인 대도시입니다. 문명 속을 배회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다시 옛시가지가 펼쳐지고 그 중심부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마주하게 됩니다.

 

 

대성당 인근 사무소에 방문하면 순례자 여권 확인 후 완주증을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사진은 제 완주증입니다. 완주증은 순례 목적에 따라 디자인이 다릅니다. 작중 등장하는 피스테라 완주증은 위 완주증과 별개입니다. 보여드리고 싶은데 제게는 없습니다. 저는 산티아고에서 하루 쉬고 다음 날 버스를 타고 피스테라까지 직행했습니다. 가는 데 두세 시간 걸린 걸로 기억합니다.

 

 

피스테라에 들어서면 긴 해변이 보이는데요, 거긴 Langosteira 해변이고 여긴 그 반대편의 Mar de Fóra 해변입니다. 예쁜 해변인데 방문객들이 모르고 지나친다며 주민분이 추천해 주었습니다. 랑고스테이라 해변이 놀기 좋은 분위기라면 여긴 사색하기 좋은 분위기였습니다. 이곳에서 한 시간쯤 걸어가면 피스테라 등대와 0km 표지석이 나옵니다.

 

 

중세 사람들이 세상의 끝이라고 믿은 장소입니다. 보이실지 모르겠는데 바위에 등산화가 설치돼 있습니다.

 

겨울의 대서양을 끝으로 첫 순례를 마무리했습니다. 사람 얼굴이 나온 사진은 배제하다 보니 군데군데 빠진 풍경이 있습니다. 다 못 보여드려 아쉽긴 하지만 겨울 순례길 위의 서늘한 공기가 간접적으로나마 전달되었기를 바랍니다.

 

절벽에서 돌아가는 길에 찍은 피스테라 전경

 

 

스페인 음식 INDEX

 

작중 등장하는 스페인어권 음식 리스트입니다. 검색이 용이하도록 링크 걸어두었습니다. 그 아래는 스페인 음식에 관한 사족입니다.

 

천사의 머리카락 cabello de ángel / 페르세베 percebe / 감자 오믈렛 tortilla de patatas / 라콘 lacón / 퀘이마다 queimada / 오루호 orujo / 엠파나다 empanada gallega / 추라스코(슈하스쿠) churrasco / 알파호르 alfajor / 투론 turrón / 테티야 치즈 queso de tetilla / 맴브리요 membrillo

 

- 스페인 음식이나 식재료 중에는 알, 아로 시작하는 단어가 많습니다. 이슬람 제국의 지배를 받을 당시 유입된 단어가 대개 그렇습니다. 단어 차용 과정에서 아랍어 관사를 그대로 쓰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영어로 치면 [토마토]가 [더토마토]로 불리고 있는 셈입니다.

 

- 스페인은 식문화에서도 지역색이 강하게 드러나는 국가지만 전 국민이 함께 즐기는 요리도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감자 오믈렛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디에서든 맛볼 수 있고, 가정마다 사람마다 고유의 레시피와 기호가 있습니다. 특히 양파를 넣냐, 안 넣냐는 전 국민의 열띤 논쟁거리입니다.

 

- 리아스 해안을 품고 있는 갈리시아는 해산물의 보고이자 알바리뇨의 고장이며 명품 소품종인 루비아 갈레가rubia galega의 원산지이기도 합니다. 갈리시아를 대표하는 요리는 문어 요리pulpo á feira입니다. 작중 엘리아스가 신학기 파티 때 루벤에게 건넨 타파스가 풀포였습니다. 삶은 문어에 올리브유, 소금, 피멘톤(파프리카) 가루를 뿌린 게 레시피의 전부인데 정말 맛있습니다. 비주얼만 보고 별거 없을 거라 생각하며 먹었다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엠파나다(엠파나디야)의 기원은 갈리시아입니다. 엠파나다라고 하면 만두처럼 생긴 음식을 떠올리실 듯한데 전통 엠파나다는 파이 형태입니다. 안에 볶은 양파로 만든 층이 들어가고 층 사이의 내용물은 다른 엠파나다와 비슷합니다. 지역 특성상 갈리시아는 꼬막, 정어리, 참치, 대구 등 해산물을 많이 넣습니다.

 

- 스페인의 대표 백포도종인 알바리뇨는 리아스 바이샤스의 해안을 따라 자랍니다. 작중 샤비와 파울라 가족이 재배하는 품종이 이 알바리뇨입니다. 페르골라 재배법을 이용하고 거친 바닷바람을 견디며 자라다 보니 껍질이 두껍습니다. 따라서 향이 풍부합니다. 사람의 인생으로 치면 청년기와 닮은 와인입니다. 과실, 시트러스 향이 강하고 시원스러우면서 바다의 맛이 첨가돼 있습니다.

 

- 갈리시아 음식을 포함해 스페인 음식은 화려함과 거리가 멉니다. 레시피 역시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쪽으로 발달했기에 간소합니다. 그럼에도 스페인 사람 특유의 지역 자부심, 그곳에서 수확한 작물에 대한 애정이 투박한 접시에 감동을 부여하고 미식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명답을 제시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글을 쓸 때 화려함을 지양하고 지역색을 드러내려 노력했습니다. 잘 표현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네요.

 

 

출간을 기념해 제가 준비한 글은 여기까지입니다. 재밌으셨나요?

 

연재를 하며 글을 읽고 계실 분들에 대해 늘 생각했습니다.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건 저임에도 독자님들과 독자님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어디를 향해 어떤 속도로 걷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원하시는 곳까지 무탈히 도달하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5년 1월

탤러해시